소리/영상 작가인 김우중과 나는 Snail Trail에 대해 알고 있었다.

Snail Trail .달팽이가 지나간 길을 말한다. 내가 처음 스네일 트레일이라는걸 알게 된 날의 흥분과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아침, 강아지 산책길에서 남편이 처음 보도블럭 바닥에 난 반짝이는 줄을 가르켜 스네일 트레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 후에 만나는 사람마다 이걸(스네일 트레이) 알려줬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우중 작가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왜!!) 이쪽 화단에서 건너편 화단까지 구불구불 반짝이는 은색줄이 그려져 있었다. 밤사이 달팽이들이 지나간 길이 아침 햇살에 비쳐서 반짝이는 것이었다. 해가 흐린 날에는 스네일 트레일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달팽이가 길을 건너지 않은 것은 아닐것이다.

화단과 화단 사이에는 보도블럭이 깔려있다. 흙바닥이 아닌 것이다. 달팽이는 몸을 빼고 배를 밀며 이 길을 건너 갔을 것이다. 부드러운 몸을 짓무르며 이 길을 건넜을까? 우리가 잠든 사이 달팽이는 온 몸을 이끌고 길을 건너며 무엇을 했을까? 스네일트레일을 몰랐을 땐 난 이길을 거리낌없이 지나다녔다. 알고 난 이후에는 늘 길바닥을 살피고 조심히 걸어다닌다. 햇살이 밝게 비춰 드러난 스네일트레일이 있다면 밟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 작은 몸으로 밤사이 열심히 이 길을 건넜을 달팽이들을 생각하면 참 기특하고 궁금하다. 이쪽 화단에서 저 쪽 화단까지, 혹은 나무둥치에 모여 그들은 무엇을 한 걸까?

자신의 집을 등에 이고 다니며 남들이 보지 않는 밤 사이 뭔가를 하는 달팽이를 보면서 우중작가와 나는 우리와 닮았다고, 당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우리들. 내 옆의 사람들. 그리고 공간들. 햇살은 잊지 않고 스네일 트레일을 비췄다. 비로소 반짝이는 달팽이의 흔적들. 우리의 작업이 반복되는, 남들이 보지 않는 일상의 자국들이 남긴 흔적들 아래에 감춰져 있는, 혹은 드러나길 바라는 반짝임을 들춰볼 수 있기를.

우리는 부스러기를 수집하는 수집가가 되기로 했다.

부스러기 한 조각은 전체의 어떤 형태와 연관된다. 때로 부분은 전체를 쉽게 가늠하게도 도무지 완전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본래의 기능이나 일상에서 별로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이 부스러기들은 각각의 시간과 상황, 이야기속에서 우리와 만난다. 부스러기는 그 자체의 물성을 떠나 그 안에 어떤 상황들과 공간,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물성의 의미를 넘어 선 부스러기들을 만나는 과정은 나와 직면하는 일이고 너와 연결되는 지름길이다.

자, 당신도 이제 부스러기 수집가가 되어 밤사이 우리가 벌인 난장에 함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