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로 반려견을 맞이한 건 분가를 이룬 후 였다. 제리는 슈나우저 종이었는데 활발하고 똑똑한 녀석이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제리는 사냥개의 dna를 가지고 있어서 에너지가 넘쳤다. 슈나우저는 보통 15년정도를 산다고 하는데 제리는 단지 18개월만 살다 갔다. 생각지도 못한 이른 제리의 죽음에는 우리의 무지와 제리의 절대적 사랑이 있었다.

갑작스런 제리의 죽음은 무지에 대한 반성과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애달픔 그리고 자책의 감정으로 가득했다.

제리를 공원 앞 도로에서 뺑소니로 보낸 날, 축 늘어진 개를 끌어 안고 미친듯이 눈에 보이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화장을 한 제리는 작은 상자에 담겨 다시 우리 옆으로 왔다.

몇일 뒤 그때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버려진 강아지가 있는데 데려가 키워보지 않겠는가 하고. 그렇게 휴고가 우리 집에 왔다. 생후 5개월의 휴고는 모견에게 심한 피부병을 받아서 견주가 병원에 버리고 갔다고 한다. 태어나서 줄곧 병원에서만 산 휴고는 집에 와서도 쉽사리 곁을 주지 않았다. 소심하고 조용하고 혼자 잘 놀았다. 얼마 뒤 건강해 보이던 휴고가 이상했다. 휴고가 왔던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휴고는 모견에게 받은 병이 다 나은것이 아니었단다. 앞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한단다. 의사한테 화가 났다.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한테 얼렁뚱땅 건강하지 않은 개를 넘겼구나! 수의사한테 속은거 같아서 화가 났다.

돌이키기엔 휴고는 이미 가족이 되었다. 혼자 놀던 휴고는 장난감을 물어오고 과자를 내놔라 밥을 달라 당당하게 요구했다. 긴 치료의 시간들이 지나고 태어나자마자 안락사를 했어야 한다는 타병원의 소견과 달리 점점 더 건강하고 점점 더 말 안듣는 장난꾸러기 개로 자랐다. 그리고 원망했던 수의사의 결정과 마음에 감사했다.

섣불리 생명을 속단할 수 없다는 것. 불치의 무엇이 포기는 아니라는 것 . 어설퍼도 모자라도 힘들어도 사랑은 쑥쑥 자란다는 것 . 14살의 휴고가 내내 보여준 것들이다.

휴고가 7살이 되었을때 산책을 가서 동네를 떠돌던 같은 종의 암컷 말티즈를 집에 달고 왔다. 집에서 대충 미용하던 휴고랑은 다르게 앙상하지만 미용실에서 용모를 다듬은 흔적을 지녔다. 동네와 시청, 인근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그 녀석의 가족은 찾지를 못했다. 시청에서는 일주일동안의 말미를 갖고 그래도 가족을 찾지 못하면 데려가겠다고 했다. 어디로? 시청에선 그 뒤엔 안락사라고 했다.

빠르게 일주일이 왔고 그 녀석은 세라가 되어 우리랑 함께 살게 되었다. 세라는 이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었고 밖에서 산 시간들을 말해주듯 자기 주장이 확실했다. 여차하면 탈출할 수도 혼자 살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으르렁되고 경계가 심하던 녀석과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많이 물렸는데 한번 물면 놓지 않을 기세로 물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본능적으로만 행동했다. 세라는 물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아! 우리가 물릴 짓을 하지 말자라고. 음식앞에 진심인 녀석에게 더 먹으라고 손내미는 짓은 위험을 자초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서로 조심하면서 익숙해졌다.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물고 방어할때에도 스스로를 자제하고 조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당당하게 세라를 혼?냈다. 세라는 휴고보다 더 많이 아프고 자잘한 병치레와 수술을 여러번 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씩씩하고 금방금방 건강해졌다.

휴고는 14살의 심장병을 가진 늙은 개로,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더 먹은 것 같은 세라는 노쇠한 개로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며 지낸다. 어느 순간부터 체력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더니 더이상 함께 산책할 수 없어졌다.

휴고와 세라의 산책 방식은 완전히 달랐는데 , 휴고는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도는 순간 나뭇가지를 찾는다. 언제부터 휴고의 습관이 된 건지는 정확하지 않는데 휴고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꼭 뭐라도 물고 집으로 향하는데 일단 입에 뭔가를 물고 출발하면 마킹도 친구도 눈에 보이는게 없다. 그저 단하나의 목적. 집에 도착하는 것!. 그모양이 꽤 웃기고 신기하기도 해서 동네에선 나뭇꾼 휴고로 나름 유명하다.

반면 세라는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이 확실하고 고집이 센데 다 친구들을 좋아해서 오며가며 만나는 모든 개들을 아는 척하고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산책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고 길어진다. 집으로 집으로만 향해 걷는 휴고와 너는 가라 나는 나대로 간다는 세라와 동시에 산책한다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제 두 녀석이 함께 산책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다.

노견이 된 후로 세라의 산책은 아주 신중해 졌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절대 놓치지 않을 태세로 구석구석 냄새맡고 음미하느라 더 길고 느린 산책이 되었다. 반면 심장이 나쁜 휴고의 산책은 짧고 확실했다.

두 녀석은 하루에 한번은 왠만한 일기예보가 아니면 산책을 한다. 대부분은 같은 길들을 반복한다. 단지 안이나 단지 밖. 단지의 왼쪽이나 단지의 오른쪽.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산책이지만 뜻밖의 일들을 곧잘 발견하게 된다.

늘 가던 길에 늘 같지 않은 뭔가와 만나게 된다.

참 별거 아닌 일에 별스럽게 웃게 된다.